아름다운 여름
언덕 위의 악마

작가 연보
역자 후기

체사레 파베세(Cesare Pavese)는 1908년 이탈리아 산토 스테파노 벨보에서 태어났으며,  토리노 대학교를 졸업했다. 파시스트 당이 문학을 통제하여 자신의 창작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등 1930-1940년대에 활동한 미국 작가들과 19세기의 작가인 허먼 멜빌과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번역했다. 에이나우디 출판사를 설립하여 반(反)파시스트 비평서인 <라 쿨투라(La Cultura)>를 편집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1935년 체포되어 10개월간 투옥되었다. 1936년 이야기 형식의 처녀 시집 <피곤한 노동(Lavorare stanca)>을 시작으로 <당신의 고향(Paesi tuoi)>(1941), <레우코와의 대화(Dialoghi con Leuco)>(1947),<달과 횃불(La luna e i falo)>(1950) 등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그의 대표작 3부작인 <아름다운 여름(La bella estate)>(1949)으로 스트레가 상을 수상했다. 파베세는 1950년 8월 27일 토리노의 한 호텔 방에서 불안과 우울로 가득한 그의 40년 인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역자  김효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비교문학과(박사과정)를 수료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에 출강하면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약혼자들>, <추억의 학교>, <돈 까밀로 뻬뽀네>, <댄스!> 등이 있다.

매일경제 2008/01/16

[허연/손동우 기자]

“이탈리아 거장 체사레 파베세, 불안과 우울의 문학”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 됐지? 너무 잔소리하지 마라.’
이탈리아 문학의 살아 있는 신화 체사레 파베세는 1950년 최고 권위의 스트레가상을 받은 직후 여성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에 초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당신은 성질도 나쁘고 지루해요”라며 초대를 거절했다. 다음날 그는 토리노의 한 호텔 방에서 글 한 줄을 남긴 채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파베세의 대표작 <아름다운 여름>(김효정 옮김)이 국내에 출간됐다. 파베세는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2006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다니엘 위예 감독의 <그들의 이런 만남들>이 특별상을 수상했을 때 이 작품이 파베세의 시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는 소식을 통해 그의 이름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파베세의 영향력은 유럽 문단에서는 만만치 않다. 그는 수많은 평자에게 니체와 같은 반열로 다뤄지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파베세는 2차대전 이후 나타난 신사실주의 문학(현실과 내면세계를 조화시키는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다. 이번에 청미래에서 펴낸 <아름다운 여름>은 1950년 그에게 스트레가상을 안겨준 바로 그 소설이다. 여름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 이 시리즈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좌절과 패배감을 통해 장년으로 성장하는 인간 모습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파베세는 작품에서 불안과 우울, 환멸감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아름다운 여름>은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열일곱 소녀 지니아와 그 주변 인물들 이야기다. 동경에 찬 눈으로 어른들 세계를 바라보는 지니아의 시선이 작품의 핵심이다. 어른 세계에 실망한 지니아는 고독과 패배감 속에서 행복했던 여름, 즉 순수했던 젊은 날의 모습을 그리워 한다.
2부 <언덕 위의 악마>는 1부에 비해 보다 성숙해진 작품으로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초초함, 죽음에 대한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토리노에 사는 대학생 피에레토, 오레스테, 화자로 등장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순수했던 여름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등장인물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잠재된 불안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작품 <고독한 여자들>에서는 이 불안감이 고독과 체념으로 변한다. 이 작품에서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은 찾아볼 수 없다. 청년기를 모두 보내고 디자이너로 성공해 고향 토리노로 돌아온 주인공 클렐리아에게 남은 것은 삶에 대한 환멸뿐이다. 앞의 두 작품이 화려한 여름을 배경으로 한 데 비해 ‘죽음’을 상징하는 칙칙한 겨울이 배경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한 느낌이 곳곳에 강하게 배어 있다.
파베세는 1908년 이탈리아 산토 스테파노 벨보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파시스트당이 창작의 자유를 통제하자 번역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反)파시스트 비평서인 <라 쿨투라>를 만든 죄목으로 투옥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1936년 이야기 형식으로 된 첫 시집 <피곤한 노동>을 내며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당신의 고향> <레우코와의 대화> <달과 횃불> 등을 출간했으며 유럽 문학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의 상징적 존재로 재평가받고 있다.

동아일보 2008/01/19

[김지영 기자]

덧없어라，아름다운 청춘이여…‘아름다운 여름’

체사레 파베세(1908∼1950)라는 이름은 우리 독자들에게 낯설다. 두어 권의 시집과 소설이 번역됐고, 2006년 베니스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그들의 이런 만남들’이 파베세의 시 ‘레우코와의 대화’를 영화화한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정도다. 이탈리아 현대소설이 많이 소개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이 이탈리아 소설가의 이름은 대단히 묵직하다. 그는 현실도피적인 경향에 반발한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문학의 대표로 꼽히는 작가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한 직후 4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름다운 여름’은 그 스트레가상 수상작이다. 3부작 중 1, 2부가 실린 상권이 앞서 나온 데 이어 3부가 실린 하권이 출간됐다. 부마다 다른 주인공의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세 이야기는 일관된 주제를 말한다.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동경’이다.
제1부 ‘아름다운 여름’은 열일곱 살의 양장점 직원 지니아가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늘 파티가 있었다. 집을 나와 길을 건너기만 하면 금세 미친 듯이 놀 수 있었다. 특히 밤이면 모든 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가면서도 또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불이 나거나 집에 동생이 태어나거나 혹은 갑자기 날이 밝아서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오기를, 그리하여 계속 걷고 또 걸어서 초원까지, 언덕 너머까지 갈 수 있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삶에 대한 명랑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지니아의 심정이 너무나 잘 드러난 문장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것이 끝장나 버렸다”고 하는 지니아의 한탄으로 끝난다. 순수했던 소녀가 동네의 원숙한 모델 아멜리아를 통해 성과 고독과 세계의 허위를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생애 아름다웠던 여름은 지나가 버린 때다.
삶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는 세 남자 대학생의 이야기가 담긴 제2부 ‘언덕 위의 악마’의 배경도 여름이다. 청춘이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다. 가을에게 점차 자리를 내주는 여름의 아름답고도 쓸쓸한 자연풍광과 더불어 저물어 가는 젊은 날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온다. 여기에 3부 ‘고독한 여자들’에 이르면 이미 청춘을 지난 패션 디자이너 클렐리아의 고독과 체념이 소설의 내용이다.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비참함, 무기력, 하찮음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라고 파베세는 일찍이 허무감 짙은 발언을 했다. 작가가 본 것은 격정에 뒤따르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서툴렀지만 어느 때보다 빛나고 생기 있었던 시간을,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는 ‘더는 아름답지 않은 현재’를 환기시킨다.
가벼운 트렌디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낯설고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듯싶다. 무게감 있는 주제의식이 실린 정교하고 유려한 문장 사이사이에서 더께더께 쌓인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제 ‘La Bella Estate’(1949년).

조선일보 2008/01/19

[김태훈 기자]

뜨거운 태양 아래 내 삶이 조금씩 타들어간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번역가인 체사레 파베세(1908~1950·사진)는 파시즘에 대한 문화적 저항운동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문학에 앞장섰던 작가이다. 신사실주의 작가들은 일상에 대한 냉정한 묘사를 통해 국가의 폭압에 대항하고, 파시즘 체제에 눌린 조국의 비참한 실상을 드러내 보였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여름>은 낭만이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허물고, 모래알처럼 껄끄러운 삶의 현실을 냉혹하게 드러내 보이는 작품으로, 체사레가 말년에 내놓은 대표작이다. 그는 3부작을 마무리한 이듬해인 1950년에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을 받았지만 그 후 얼마 안 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40년 발표된 1부 <아름다운 여름>은 17세의 꿈 많은 양장점 여직원 지니아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의 무대 토리노는 활력과 인파로 넘치는 도시다. 모델로 살아가는 아멜리아를 만난 지니아는 그녀의 화려한 삶에 매혹돼 “내 삶을 이끌어 달라”고 말한다. 아멜리아는 지니아에게 구이도를 소개하고, 지니아는 그와 동침한다. 불안과 기대가 어지럽게 혼재하는 시기를 관통해가며 소녀는 조금씩 성인의 세계로 들어가지만 그 세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두려움과 낭패감에 빠져든다.
2부 <언덕 위의 악마>에서는 그 두려움과 열패감이 현실적인 무게를 가진 삶의 동반자로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피에레토, 오레스테, 폴리, 그리고 나 등 네 사람은 부르주아적인 삶에 환멸을 느껴 마약을 탐닉한다. 별장에서 한껏 먹고 마시며 삶이 던지는 근원적 불안이라든가 존재와 신의 의미 등에 대해 신나게 논쟁하지만 여름이 끝나고 포도 수확기가 되자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각자의 일터로 맥없이 흩어진다.
3부 <고독한 여자들>은 작가의 염세적 인생관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주인공 클렐리아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고향을 탈출한 뒤 성공한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온다. 앞의 이야기와 달리 클렐리아는 부유층으로서의 삶을 만끽하지만 그 삶에 내재된 근원적인 허무를 꿰뚫어보고 무력감에 빠져든다.
작가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후 토리노로 이사한 뒤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소설 3부작은 모두 토리노를 무대로 펼쳐진다. 이곳에서 그는 문학적 성공을 거두지만, 거듭된 사랑의 실패로 인해 자살충동에 사로잡힌다. 연모하던 여자를 따라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고 투옥까지 당했지만 감옥에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인 불행이 문학적 성취의 거름이 되었지만 작가의 영혼은 문학의 양초 불빛 속으로 녹아 없어져버린 것이다.